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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꼬박 새워 마이크를 붙잡은 국회의원. 목이 쉬어 가는데도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10시간이 넘는 토론 끝, 그는 돌연 단상에서 내려와 본회의장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큰절 사죄’. 비상계엄의 후폭풍이, 이렇게 국회를 완전히 멈춰 세우고 있다.

만약 당신이 출근길에 뉴스를 켰는데, 국회가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가 “국회의원들이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기 때문”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정확히 그렇다. 비상계엄 후폭풍, 내란죄, 특별 재판부,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선 단어 하나.
필리버스터. 국회가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
Content
이번 필리버스터의 출발점은 한 번의 ‘선포 시도’였다. 언론이 “12·3 비상계엄 사태”라고 부른 그 시점부터, 정치권의 단어 선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야당은 이걸 ‘단순한 정치 해프닝’이 아니라, 헌정을 뒤흔든 중대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거기서 꺼낸 표현이 바로 ‘내란죄’다. 관련자들을 내란 혐의로 수사하고, 재판까지 신속히 밀어붙이기 위해 야당이 요구한 건 별도의 ‘내란 전담 재판부’였다.
그래서 등장한 게 형사소송법 개정안. 핵심은 이 사건을 담당할 특별 재판부 성격의 구조를 법에 박아 넣겠다는 것이다. 야당은 이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려 신속 처리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처리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여당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헌정 수호”가 아니라 “사법부 장악”이라고 본 것이다. 내란 사건 전담 재판부를 국회 다수 의석으로 설계해 버리면, 결국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정치가 재판에 개입할 통로가 열린다는 논리다.
양쪽 모두 ‘헌법’을 말했고, 모두 ‘민주주의’를 말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타협은 없었다. 그래서 국회는 가장 극단적인 도구를 꺼냈다.
여야 합의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여당이 꺼내 든 카드가 바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개시할 수 있는 ‘합법적인 의사진행 저지 수단’이다. 특정 안건에 대한 표결을 늦추기 위해 의원들이 돌아가며 무제한으로 발언을 이어간다. 길게는 밤샘, 며칠째 연속 발언도 가능하다.
이번에도 똑같다. 야당이 추진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특히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 조항을 막기 위해 여당 의원들이 마이크를 이어받고 있다. 일부 의원은 발언 시간이 10시간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회 본회의장은 말 그대로 24시간 돌아가는 토론장이 됐다.
여기서 오해가 하나 생긴다. “그럼 저렇게 계속 떠들면 법안은 그냥 영원히 못 하는 거 아니냐?”
아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포인트다.
국회법에는 안전장치가 있다. 필리버스터가 시작돼도, 24시간 이후에는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토론을 강제로 종결시킬 수 있다. 야당이 이미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필리버스터는 결국 ‘시간을 늦출 수 있을 뿐, 영원히 막지는 못한다’는 구조다.
그럼에도 여당이 이 카드를 꺼낸 이유는 명확하다. 시간을 끌면서, 이 이슈를 최대한 정치적·여론전의 한가운데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이건 사법부 장악”이라는 프레임을 국민 앞에서 끝까지 강조하겠다는 전략이다.
결국 이 무제한 토론은 국회 안에서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국회 밖 국민을 향한 ‘생중계 정치쇼’가 된다.
그리고 이 쇼의 긴장감이 가장 폭발한 순간, 한 사람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필리버스터가 길어질수록, 국회 본회의장은 더 ‘극장’처럼 변했다. 마이크를 잡은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태의 위험성을, 또는 야당의 법안 추진을 향한 분노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여기서 가장 크게 화제가 된 장면이 하나 있다.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의 발언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필리버스터 도중 비상계엄 사태와 정치권 혼란을 언급하며 국민께 ‘큰절 사죄’를 했다. 단상 아래로 내려와 국회 본회의장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하는 모습은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고, 이 장면은 곧 각종 뉴스와 SNS,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정치권이 이렇게까지 가야 했냐”는 자조, “퍼포먼스 아니냐”는 냉소, “그래도 저 정도 사과라도 하는 게 어디냐”는 반응까지, 댓글과 게시판은 갈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큰절 한 장면이, 지금 한국 정치의 혼란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어버렸다는 것.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 인요한 의원의 ‘의원직 사퇴’ 선언이 이어졌다. 비상계엄 정국과 극한 여야 대치 속에서 나온 이 선언은 “정치 전체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전체를 향한 국민의 시선은 더 차갑게 식어갔다.
그 사이에 벌어진 또 하나의 일.
민생 법안이 통째로 멈춰섰다.
국회 본회의가 사실상 필리버스터 전용 무대가 되면서, 다른 주요 법안과 국민 생활과 직결된 민생 법안 처리는 줄줄이 뒤로 밀렸다. “비상계엄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입법”이 오히려 국회 전체를 공전시키는 아이러니를 낳은 셈이다.
정치권은 “헌법을 지키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TV를 끈 국민이 체감하는 건 딱 하나다.
법은 안 만들어지고, 싸움만 한다.

여야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야당은 “내란 행위에 준하는 시도에 대한 단죄가 우선”이라고 말하고, 여당은 “정치가 재판을 설계하는 건 위험한 선례”라고 맞선다.
국회법상 시나리오는 이미 대부분의 언론이 짚었다. 필리버스터는 24시간 이후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이 표결로 종결시킬 가능성이 높고, 법안은 통과될 확률이 크다. 여당은 그다음 다른 안건에서도 연쇄적인 필리버스터를 예고해, 연말까지 국회 공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쯤 되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그럼 시민은, 유권자는 도대체 뭘 할 수 있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거창하지만 동시에 가장 단순하다.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언론에 쏟아지는 단어들을 하나씩 붙잡아보면, 흐름은 선명하다. 비상계엄 시도 → 내란죄 공방 → 내란 전담 재판부를 둘러싼 형사소송법 개정안 → 이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 → 그 과정에서의 큰절 사죄와 의원직 사퇴 선언 → 그리고 멈춰 선 국회.
이 사건의 모든 장면은, 결국 다음 선거 때 투표용지 위에서 다시 재생된다. 어느 정당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어떤 의원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어떤 법안에 어떻게 표를 던졌는지.
지금 할 수 있는 딱 하나의 행동은 이것이다.
‘정치 혐오’로 TV를 끄는 대신, 누가 무엇을 했는지 끝까지 지켜보고, 나중에 표로 응답할 준비를 하는 것.
독자가 실제로 던질 법한 질문들만 모아 정리했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는 한 명 한 명의 의원 발언 시간에 별도 상한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로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토론도 가능하다. 다만 안건별 전체 토론은 24시간 이후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종결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무제한’일 수는 없다.
야당이 추진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특히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를 골자로 한 내용의 표결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여당은 그 시간 동안 “사법부 장악 시도”라는 프레임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려 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시도는, 야당이 보기엔 헌정을 뒤흔든 ‘중대한 사태’였다. 그래서 이걸 ‘내란죄’ 수준의 범죄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신속·엄정한 수사와 재판을 요구했다. 그 수단으로 특별 재판부 성격의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가 거론됐고, 여기서부터 여야가 완전히 갈라섰다.
내란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전담’시키는 구조를 국회 다수 의석으로 법제화하면, 사법부 인사와 재판 구조에 정치가 개입할 통로가 열린다는 우려 때문이다. 여당은 이를 “정치 보복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비판하며, 헌법상 권력 분립 원칙이 훼손될 소지가 있다고 본다.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지연’이다. 민생 법안, 경제·사회 관련 주요 입법이 줄줄이 밀린다. 비상계엄 사태 수습을 위한 입법이 국회를 마비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미 벌어졌다. 장기화될 경우, 정치 불신 확대와 사회적 혼란 비용 증가가 수차례 언론에서 지적되고 있다.
필리버스터가 한 번 종결된다고 해서 갈등이 사라지진 않는다. 여당은 다른 법안에 대해 추가 필리버스터를 예고해 왔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앞으로 연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정국 패턴’의 시작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
이게 바로 이번 논쟁의 핵심 쟁점이다. 야당은 “기존 시스템만으로는 권력형 범죄에 대한 단죄가 어렵다”며 특별 구조를 요구하고, 여당은 “그 특별 구조 자체가 정치적 중립성을 깨뜨린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도 완전히 물러서지 않고 있어, 사법 시스템 전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시, 그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필리버스터 도중, 마이크를 내려놓고 바닥에 이마를 박은 의원. “큰절 사죄”라는 자막이 화면 밑을 지나갔다.
그건 한 사람의 퍼포먼스이자, 동시에 정치 전체가 국민 앞에 엎드려야 할 시점이라는 상징처럼 보였다. 비상계엄 시도, 내란죄 공방, 내란 전담 재판부와 형사소송법 개정안, 그리고 이를 둘러싼 필리버스터까지.
모두가 “나라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국회는 멈췄고, 민생 법안은 밀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진짜 필리버스터는 국회 안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시작된다. 오늘 국회가 한 선택은, 다음 투표장에서 다시 표를 통해 심판받게 된다. 밤새 켜져 있던 본회의장의 불빛은 언젠가 꺼지겠지만, 누가 무엇을 했는지의 기록만은 꺼지지 않는다.